[詩] 🌒 오늘도, 아무 말 없이 퇴근한 당신에게

오늘도
불 꺼진 사무실 끝자리에서
누구보다 늦게,
나라는 이름을 데리고 일어섰다.

 

서랍 속에는
마음껏 한숨 한번 못 쉰
나의 낮이 구겨진 채로 남아 있고,

 

책상 위 커피잔에는
식은 온기보다 더 식어버린
내 의지가 조금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버틸 수 있다는 건 강하다는 뜻이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버틴다는 건
부서지지 않았다는 말이지,
부서지고 싶지 않아서 매일 조금씩
금이 가는 일이라는 걸.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직원이었고,
친구였고,
아들이었지만

정작 ‘나’는 없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비워내듯 걷는다.

퇴근 차창 창문에 어른거리는 불빛들 사이로

내 하루가 스쳐간다.

숨 막히게 빠른 세상 속에서
나는 오늘도 그렇게 마무리한다.

집 앞 가로등 아래
길고양이 한 마리가 눈을 마주친다.

 

그 눈빛 속에서
왠지 모르게
나를 보는 듯했다.

 

말 없이 하루를 견디는
그 작고 단단한 생명처럼.

 

문을 열고 들어온 집,
불이 켜지지 않은 거실에
잠시 서 있다.

 

고요 속에서
내 마음도 조용히 앉는다.

 

그제야 문득,
가슴 한편이 저린다.

누군가 한 사람,
이 말 한마디를
해줬으면 했다.

 

"수고했어요.
정말, 수고 많았어요.
오늘도 잘 견뎌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오늘은
내가 나에게 말해본다.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게,
부드럽게,
무너지지 않도록.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 피로는 실패가 아니라,
살아낸 증거야.”

“내일의 너는,
오늘의 너에게
고마워할 거야.”

 

그리고 다시,
조용히 커튼을 걷고

오늘이라는 긴 한숨 위에
별 하나를 켠다.

 
 

- 퇴근길 데이터 마법사 -